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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번역] 아카루트 <논문번역지원사업>에 선정된 해외논문 번역문들을 소개합니다.

[웹툰] 대학원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듀선생의 인생제반연구소>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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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번역 "장자"의 치언이 위언의 오류임을 논하며ㅡ언무언에 대한 장자학파의 이론 설계와 실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카루트
조회
310회
작성일
22-04-05 11: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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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번역은 역자의 지도교수인 창썬(常森)의 최근 연구들을 더듬어보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원저자 창썬은 현재 베이징대학(北京大學)의 중문과 교수이며 주로 선진양한시기 중국의 고대 문학과 제자백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한 논문 또한 제자백가의 대표적 인물인 장자(莊子)를 다룬다. 역자는 이 글이장자(莊子)의 사상을 더 깊이, 더 바르게 읽도록 돕는 하나의 마중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사상의 내용은 그 사상을 전달하는 언어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형식이 내용을 가름하며 결정한다. 같은 말일지라도 전하는 이의 언어 습관과 전달 형식에 따라 그 내용의 결은 사뭇 달라지게 마련이다. 형식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자(莊子)라는 텍스트와 그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장자를 접해본 독자라면 우언(寓言)과 중언(重言) 그리고 치언(巵言)의 세 가지 말에 대해 기억할 것이다. 이 세 가지 말은 장자와 그 후학들이 그들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활용한 말하기 방식이다. 이미 장자(莊子)우언(寓言)천하(天下)두 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장자(莊子)의 대부분은 사물과 인물에 가탁한 우언이 주를 이룬다. 그 뒤를 중언과 치언의 말하기 방식이 잇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론만 분분할 뿐 아직까지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저자는 중언과 치언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지양하고, 이 두 가지 말하기 방식에 대한 다시 읽기를 주문한다. 우선 중언을 권위자나 노인의 말로 이해하던 기존의 풀이 대신, 저자는 중언을 우언에 대한 반복과 변주로 본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중언이란 다시 하는 말’, 혹은 거듭하는 말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장자(莊子)안의 유사한 우언들이 반복 나열돼 있다는 실례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다음으로 저자는 치언을 위언으로 고쳐 읽을 것을 주장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치언(巵言)과 위언(危言)의 자형이 유사한 까닭에 필사자의 오기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그저 오기된 그대로의 오독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치언을 억지로 풀고자 했던 옛 주석가들은 이를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술에 취한 말정도로 옮기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위언(危言, 즉 치언으로 오독되어왔던)바르고 직설적인 말을 가리킨다.

 

  우언(중언을 포함)과 위언은 두 가지 대조적인 말하기 방식이다. 전자가 다른 대상에 가탁하여 뜻을 펼치는 간접적 말하기라면, 후자는 제삼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하는 직설적 말하기이다. 구체적 언어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장자와 그 후학들은 직설적 말하기 방식이 가진 한계를 절감했다. 즉 곧이곧대로 말해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왜 장자(莊子)가 대부분 우언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와 무관하지 않다.

 

  『장자(莊子)는 우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위언의 기능 또한 무시하지 않았다.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 흐를 것만 같은장자(莊子)의 우언을 두고, 위언은 그 우언이 지향하는 본의를 파악하게 돕는다. 요컨대 우언과 중언 그리고 치언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장자(莊子)의 전체 텍스트 안에서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저자는 이를 다시 언무언(言無言)’ , ‘말하면서도 말하지 않는독특한 화용론적 경지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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